외무성 「다케시마」 팜플렛 비판
(2) 조선사서(史書)
2008/ 4/ 12
Yahoo Japan 게시판 ‘竹島’ No.16407
외무성 왈(曰)「한국이 예로부터 다케시마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는 없습니다」
팜플렛은 이런 표제로 계속해서 한국의
주장을 적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측은 조선의 고문헌 『삼국사기』(1145년) ,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1770년) 『만기요람』 (1908년) 등의 기술을 근거로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을 예로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 우산도가 바로 오늘날의 다케시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외무성이 말하는 「한국측」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불명확하나, 적어도 한국정부가 일본정부 앞으로 보낸 공식반론에는『삼국사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주1). 외무성은 환상과 같은 주장에 반박하고 있을 뿐, 정작 중요한『세종실록지리지』에 대한
반론은 없는 것 같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과 무릉의
두 섬이 현의 정동쪽의 바다에 있다.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 볼 수 있다」라고 쓰여 있으나, 이 글이야 말로 한국이 예로부터
다케시마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근거로 한국정부가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외무성의 가와카미 켄죠는 그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울릉도로부터 다케시마=독도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정도입니다. 그 주장은 울릉도의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면 충분히
보인다고 반론 당해서 가와카미의 노력은 헛수고로 끝났습니다. 그런 정도로 중요한 문헌인 『세종실록지리지』에 대하여 팜플렛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팜플렛은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측은『동국문헌비고』, 『증보문헌비고』, 『만기요람』에 인용된 『여지지』(1656년)를 근거로 우산도는 일본이 말하는
마쓰시마(현재 다케시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여지지』의 원래 기술은
우산도와 울릉도는 동일의 섬이라고 하고 있으며 『동국문헌비고』의 기술은『여지지』에 직접적으로 정확하게 인용된 것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동국문헌비고』등의
기술은 안용복의 신빙성이 낮은 진술(5. 참조)을 아무런 비판 없이 인용한 다른 문헌『강계고』, 『강계지』(1756년)를 원본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는 외무성의 조사부족이 드러나고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여지지』의 본래의 기술은, 결코 「우산도와 울릉도는 같은 섬」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각각 서로 다른 섬임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지지』는 유형원의 『동국여지지』라고 여겨집니다만, 『여지지』의 번역은 아래과 같습니다.
우산도 울릉도
혹은 무릉이라 하고, 혹은 우릉이라 한다. 두 섬은 현의 정동쪽의 바다에 있다. 세 개의 봉우리가 높고 가파르게
하늘로 솟아 있다. 남쪽의 봉우리는 조금 낮다. 날씨가 좋으면 봉우리 꼭대기의 나무나 산기슭의 모래사장, 바닷가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바람을 타면 이틀만에 도착할 수
있다.
일 설에
의하면 우산, 울릉도는 본래 하나의 섬이라고 한다. 그 땅의 크기는 백리이다.
이 글은 관찬서인 『동국여지승람』과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표절은 아닙니다. 원래 『여지지』는 그 범례에 쓰여 있는 것처럼 『동국여지승람』을 보충하고 수정하는 데 목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명저인 『동국여지승람』은 출판
후
200년
가까이 지나있었고 그 사이 많은 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증보를 목적으로 『여지지』가 쓰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우산도와 같은 변동이 없는 기술은 전과
다름없이 기술되었습니다.
즉 『동국여지승람』도 『여지지』도
우산도와 울릉도를 각각의 섬으로 기술하고, 일도설(一島說)을 단지 일설로써 쓴 것입니다. 그러므로 외무성의 해석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외무성이 그런 초보적인 오류를 범한
것은,
팜플렛이
말하고 있는 어떤 「연구」를 검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연구라고 하는 것은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씨의 연구를 가리키고 있는 듯 합니다. 시모조씨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오리지널의 「여지지」는 「일설에
우산울릉은 본래 하나의 섬」이라 해서, 우산도와 울릉도는 같은 섬의 다른 명칭(동도이명)이라고 했으나, 마쓰시마(현재의 다케시마)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라고 하는 것이다(주3).
시모조 마사오씨처럼 자료의 일부분만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면, 저자(著者)의 견해와는 정반대의 해석까지도 가능합니다. 『여지지』는 본래의 설명에서 우산도와 울릉도는 각각 다른 섬으로 하고, 일설(一說)에 두 섬이 본래 하나의 섬이다
라고 했습니다만, 시모조씨는 일설의 기술만을 발췌해, 『여지지』의 견해와는 정반대의 견해를 마치 『여지지』의 견해인양 적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모조씨의 늘 그대로의 아전인수격인
수법이므로 놀랄 것까지는 없습니다만, 외무성은 그 잘못된 자의적인 해석을 그대로 믿고, 원전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작업을 소홀히 한 듯 합니다.
그것을 좀 벌충해보려는 의도인지, 외무성은 시모조씨의 견해를 외무성의
공식 견해라고 하지 않고, 그러한 연구도 있다고 하여, 빈틈없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하고 팜플렛을 제작한 듯 합니다. 임시방편적인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팜플렛의 설명으로는 『여지지』와
『강계고』 등의 관계를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여지지』는 신경준에 의해 『강계고』및 관찬서인 『동국문헌비고』의 주석에 다음과 같이 인용되었습니다.
『강계고』 (1756년)
짐작하건대 여지지가 말하는 일설에
우산 울릉은 본래 하나의 섬 그런데 여러 지도의 뜻을 생각하니 두 개의 섬이다. 하나는 다름아닌 이른바 마쓰시마 틀림없이 두 섬
모두 우산국이다
『동국문헌비고』 『여지지』(1770년)
여지지가 말하는 것은 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 우산은 다름아닌 왜(倭)가 말하는 마쓰시마이다
일반적으로, 고문서는 일본만이 아니고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구두점이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에도 주석의 어디까지가 인용인지, 어디서부터가 신경준의 견해인지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여지지』의 원문을 분석하면 『강계고』의
경우는 시모조씨의 말처럼 「일설에 우산 울릉은 본래 하나의 섬」이『여지지』의 인용문이고, 그 이후는 신경준의 견해임이 이해됩니다.
신경준은『여지지』나 『동국여지승람』에
참고로써 쓰여진 일설(1도2명설)을 완전히 부정하기 위해, 일부러『강계고』에 그 일설을 특별히 기록한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한편 당시의 정설인 2도2명설은 자명했기 때문일까 주석에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여집니다.
다음으로 『동국문헌비고』의 경우는
「울릉 우산은 모두 우산국의 땅」이 인용문이고, 그 이후의 「우산은 다름아닌 왜(倭)가 말하는 마쓰시마이다.」는 신경준의 견해인 것을『여지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때 저는『동국문헌비고』에 있어서의
인용문헌 명(名)을 『강계고』라고 해야 마땅한데 신경준이 실수하여 『여지지』로 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시 위에 쓴 것처럼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적은 것과 같이 시모조
마사오씨가 말하는 사서의 개찬(改竄, 글자나 글귀를 고의로 고침)등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동국문헌비고』과 『강계고』, 두 책의 경우 신경준이 주석의 후반부에
「우산은 왜(倭)가 말하는 마쓰시마」라는 취지의 글을 쓴 것은 안용복 사건의 영향이라고 보여집니다. 1696년 (겐로쿠9년) 안용복은 다케시마(울릉도)로부터 마쓰시마(자산도)를 경유해 일본에 와서, 오키노시마(隱岐島)등에서 「강원도 안에 자산이라고
하는 섬이 있어 이것을 마쓰시마라고 한다」라고 호소했다.
안용복은 같은 내용의 공술을 조선에서도
행해서,
그것이 조선에서
우산(자산)은 일본의 마쓰시마라는 인식을 낳고
『동국문헌비고』과 『강계고』, 두 책에 반영된 듯합니다. 안용복의 공술은 전부가 진실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가 마쓰시마(자산도) 즉 다케시마=독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끝으로 팜플렛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 그림지도를 비판했습니다만, 원래 그림지도는 지도와 달리 부정확한 것이 그 특징입니다. 게다가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16세기의 그림지도에 있어 멀리 떨어진
섬 등은 그 위치나 크기 등 거의가 엉터리에 가까운 것이 당연합니다.
외무성은 「우산도는 울릉도보다 훨씬
작은 섬으로 그려져야 할 터입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만, 그러한 비판은 그림지도가 아니라 지도를 상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외무성이 다케시마=독도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있는
지도」라고 주장하는 나가쿠보 세키스이의「지도」에 외무성의 비판이 아주 정확하게 들어맞습니다. 이 지도는 다케시마와 마쓰시마를 거의 비슷한 크기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외무성의 크기 비판을 전혀 감당하지 못합니다. 더구나 세키스이도에서 다케시마와 마쓰시마의 위치마저도 실제와 다릅니다.
19세기의 세키스이의 지도 조차 이런
형편입니다. 하물며 16세기의 그림지도를 놓고, 뭔가 의논하는 것 자체가 정말로 무의미 합니다. 그림지도는 단지 당시 사람들의 공간인식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앞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부속
그림지도로 말하자면 단지 동해에 우산 울릉의 두 섬이 존재한다고 하는 공간인식을 표현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이상의 논의는 본말이 전도 된
격입니다.
(注1)塚本孝「竹島領有権をめぐる日韓両政府の見解」『レファレンス』2002.6号
(注3)下條正男『竹島は日韓どちらのものか』文春新書、2004,P100
다른 글